나는 언제 진짜 배웠고, 무엇이 나를 꺾었는가? : 나는 몰입을 배우는 중이다.
1. 러닝커브는 직선이 아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금방 잘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뭔가를 배우는 과정이 마치 선형적
일 거라고 착각한다.
이해하고, 연습하고, 반복하면 점점 실력이 늘어날 것 같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러닝커브는 오래도록 평평하다가, 어느 순간 급격하게 치솟는다.
대부분은 그 평평한 구간에서 지쳐서 포기한다.
“나는 안 맞아”라고 결론 내리게된다.
하지만 사실은, 아직 각이 안 꺾인 것뿐이다.
2. ‘배움의 벽’이라는 착시
초보자가 제일 자주 마주치는 감정은 두 가지다.
불안과 의심.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이 안 따라온다.
개념은 이해했는데, 손이 안 움직인다.
다른 사람보다 느려 보이고, 멈춰 있는 것 같다.
이걸 사람들은 ‘벽’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는 벽이 아니라, 고지대 진입 전의 정체 구간이다.
거기서 포기하면 곡선은 그저 직선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정체를 견디면,
생각도 행동도 어느 순간 갑자기 정렬되며 꺾인다.
3. 러닝커브가 꺾이는 순간의 감각
어떤 순간이 온다.
어제는 분명히 이해 안 됐던 코드가, 오늘은 손가락이 먼저 쳐진다.
일주일 전엔 덜덜 떨면서 발표했던 PT가,
오늘은 감정을 넣어 말하고 있다.
러닝커브가 급상승의 포지션으로 꺾이는 순간은 느리지 않다.
오히려, 급격하다.
그건 ‘아는 상태’가 아니라, ‘몸에 각인된 상태’다.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 연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땐 자신도 모르게 더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푼다.
4. 중요한 건 ‘곡선의 존재’를 아는 것
러닝커브의 가장 잔인한 점은,
오르기 직전이 가장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라는 것이다.
누적된 시간도 애매하고, 결과도 없는 듯하고, 자존감은 바닥일 때.
그런데, 그 곡선이 “어차피 존재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 정체 구간도 버틴다.
그건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인식의 영역이다.
러닝커브는 실력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아직 꺾이지 않았을 뿐, 끝난 게 아니다.”
이 문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래간다.
그리고 결국 올라간다.
5. 러닝커브는 기술보다 자아를 만든다
배우는 일은 기술을 쌓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의 인내력, 해석력, 감정 컨트롤, 몰입 체계를 조립하는 일이다.
그게 러닝커브의 진짜 목적이다.
왜 똑같은 툴을 배워도 어떤 사람은 길게 가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멈출까?
그건 지능이 아니라, 자기 리듬을 발견했느냐의 차이다.
배움이란 건 결국, 자기를 알아가는 실험실이다.
러닝커브는 점수가 아니라 자아 곡선이다.
6. 러닝커브는 되돌아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진행 중엔 잘 모른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진짜 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만 계속 가고 있다는 감각만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한 달 전의 나를 보면, 놀란다.
“내가 이걸 해냈다고?”
이건 되돌아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자격이다.
배움은 앞으로 걷지만, 성장감은 뒤에서 온다.
7. 곡선은 반복된다
처음 한 번 꺾이면 끝일까?
절대 아니다.
러닝커브는 하나의 언덕이 아니라 산맥이다.
하나 넘으면 또 다음이 있다.
한 곡선을 지나면, 또 다른 평평한 길이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반복된다.
이제 중요한 건 이거다.
“다시 평평해졌을 때, 내가 멈출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러닝커브의 고수란, 이 곡선이 반복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꺾이지 않았다고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꺾일 걸 ‘기다릴 줄’ 안다.
8. 러닝커브를 살아간다는 것
러닝커브는 단지 배움의 곡선이 아니다.
그건 살아가는 자세이자, 자기 확장의 원리다.
세상이 너무 빠르고,
비교는 쉬워졌고,
“왜 너는 아직도 거기야?”라는 질문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러닝커브를 믿는 사람은, 자기 속도로 걷는 사람이다.
그들은 보여주기 위한 배움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꺾이지 않아도 계속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가장 단단한 형태의 성장을 손에 넣는다.